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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UGE 3 선택과 결정: 전화의 덫에 걸린 호모 이코노미쿠스
위키디피아를 보면, '경제인 Homo economicus'이란 곧 많은 경제 인론들이 가정하는 경제적 인간이란 "부를 원하고 불필요한 노동을 피하며, 이런 목적에 맞게 판단을 내릴 능력을 지닌 합리적이고 자기 이해에 충실한 행위자"라는 가정을 뜻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합리성이란 우리가 결코 쉽게 달성할 수 없는 매우 높은 기준이다. 우리가 정말로 합리적이려면 적어도 매사를 냉철한 눈으로 바라보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과 신경과학이 제시하는 증거는 반대편으로 쏠려 있다. 여건이 좋으면 우리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일까?
인간의 선택은 경우에 따라 완전히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나쁜 소식은 이렇게 절묘한 합리성이 정상보다는 예외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은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사람들이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며 은퇴 후 생활을 어떻게 계획하는지 등에 관한 이론이다. 나아가 경제학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는지에 관한 이론이고자 한다.
진화의 비교적 최근 산물인 의식적 의사결정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의 결정은 더 형편없는 것이 될 때가 많다. 인간의 수행 능력이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수많은 증거들이 존재하낟.
너무나도 비합리적인 우리의 뇌
합리적인 선택이론에 따르면 여러분은 "예상 효용 expected utility'을 계산해야 한다. 곧 가능한 모든 결과에 대해 가능성에 따라 가중치를 더한 뒤 예상되는 이익 총액의 평균을 내는 식으로 예상 이익을 계산하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돈에 대해 다소 덜 합리적인 방식으로, 곧 절대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상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돈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에 대해 생각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모든 척추동물은 수의 '근사 체계 approxomate system'라고 부르는 것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것과 적은 것을 구별한다. 그리고 이 체계는 다시 '비선형적 nonlinear'이라고 하는 독특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1과 2의 차이가 101과 102의 차이보다 주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돈 문제에 잘 대처하도록 진화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먹는 것에 잘 대처하도록 진화하였다. 이처럼 돈에 대한 이해가 음식에 대한 이해와 뒤얽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가 돈에 대해 상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인지 발달 역사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우발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합리성은 '날아간 비용'에 대해 생각할 때도 문제가 된다. 사람들은 '낭비'에 대한 걱정 때문에 덜 재미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상한 사고방식이 세계적인 규모로 전개된다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사물의 예상 효용에 따라, 그것이 얼마나 큰 만족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따라 그것의 가치를 평가해야 하며, 그래서 효용이 가격보다 클 때에만 그것을 사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은 경제적 합리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치를 결정하는 첫째 원리가 상대적인 관점에서 결정한다는 것이라면, 둘째 원리는 무엇이 정말로 가치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아주 막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닻 내림 효과는 인간 인지의 매우 기본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은 강아지나 물건의 가치를 평가할 때뿐만 아니라, 삶 자체처럼 무형의 것에도 적용된다. 실제로 우리의 거의 모든 선택은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든 아니든, 문제가 어떻게 제기되는가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다.
문제의 표현 방식만 바뀌었을 뿐, 두 가지는 완전히 똑같은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것을 가리켜 '틀 짜기 framing'라고 부른다. 정치인들과 광고주들은 인간이 틀 짜기의 영향에 취약하다는 점을 언제나 이용한다. 틀 짜기가 이렇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선택이 (신념과 마찬가지로) 불가피하게 기억의 매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를 통해 형성된 우리의 기억 체계는 그때그때의 맥락 특징에 의해 본질적이고도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맥락이 바뀌면 여러분의 선택도 따라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결정의 순간에 우리가 무엇을 기억 속으로 불러내는지가 때로는 결정적인 차이를 낳는다. 어떤 상품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유쾌한 연상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적절하든 적절하지 않든 그 상품은 더 잘 팔릴 것이다. 맥락은 우리에게 생각할 재료를 제공함으로써, 신념은 물론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근시안적 선택과 할인 쌍곡선
틀 짜기, 닻 내림, 광고에 대한 민감성 등의 현상들은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그 밖에도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그때그때 내부 상태에 따라 떠오르는 기억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기억의 신속함과 맥락 민감성은 위협적인 호나경에서 급히 결정을 내려야 했던 우리 선조들에게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맥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데, 합리성은 저렇게 말하고 있다면, 합리성은 언제나 양자 간의 싸움에서 지고 만다.
진화의 관성은 현대인이 이따금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곧 우리는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예상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런 불확실성이란 오늘날 대부분 (그리고 다행히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할인 쌍곡선 hyperbolic discounting curve'은 유기체가 미래보다 현재를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유혹이 가까이 있을수록 그것을 물리치기란 더더욱 어렵다.
우리 인간은 순간을 살아가던 선조들의 경향을 넘어서지 못했다. 우리 뇌가 비교적 편리한 현대인의 삶을 따라잡지 못했다. 만약 우리 선조들의 경우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수명이 훨씬 더 짧거나 이 세계가 훨씬 더 불확실하다면, 미래보다 현재를 극단적으로 선호하는 우리의 태도가 사리에 맞을 것이다. 나는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 사이의 이러한 긴장이 현대인의 삶의 많은 부분을 규정하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서와 기억과 선택의 도미노 현상
우리가 근시안적으로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현대인의 소시민적 갈등의 절반만을 설명해 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또 다른 선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영리한 유일한 종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멍청한 짓을 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안다는 사실은 나의 뇌가 갈등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여러 체계들을 끌어 모은 것임을 시사한다.
진화는 조상 전래의 반사 체계를 먼저 만들었고, 그다음에 합리적 사고를 위한 체계를 발전시켰다. 선조 체계는 그것이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언제나 우리가 제일 먼저 의지하는 기본 값인 듯하다. 우리는 급박할 때뿐만 아니라 피곤할 때, 주의가 산만할 때, 또는 그냥 나태할 때에도 숙고 체계를 외면한다. 숙고 체계를 사용하는 것은 의지의 작용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먼저 생긴 선조 체계가 얼마나 근시안적이든 상관없이 우리의 숙고 체계는 (설사 어떻게 발언권을 얻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것들로 오염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미래를 깎아내리는 행동이 그렇게 요지부동의 습관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가 결국 선택을 그르치게 되는 것은 논리와 정서 사이에 긴장이 생길 때다. 즉각적인 현재의 유혹은 그것의 한 예일뿐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몇몇 결정들이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인 이유로 내려졌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긍정적인 감정도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현상은 위에서 언급한 질투, 사랑, 복수 등 명백한 경우들뿐만 아니라,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들에도 해당된다. 우리의 숙고 체계가 선조 체계와 불일치하는 것은 하나의 문제다. 그리고 이 두 체계가 통제권을 두고 서로 경쟁하면서 멋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런저런 정서가 일정하게 기억을 예비시키고, 이렇게 예비된 기억이 다시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내장의 유혹 the attraction of the visceral'은 또 다른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배고픔, 성욕, 행복, 슬픔 등은 흔히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고에 개입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기술의 누진적인 중첩을 통한 진화는 우리가 뭐라고 우기든 이런 요인들이 위세를 떨치도록 만들었다.
도덕적 선택과 도덕적 직감
우리의 의사결정 능력의 결함은 도덕적 선택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우리의 도덕적 선택이 언뜻 신중한 사고의 결과처럼 보일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비이지적인 정서 또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새 차를 사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든 사람의 목숨이 걸린 중차대한 결정에서든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정당화하기는 어렵지만, 강력한 도덕적 직감을 지니고 있다고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주장한다. '도덕적으로 말문이 막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세부사항을 자세히 뜯어보지 않고 전체적인 상에 주목하는) 선조 체계와 (사태를 자세히 분석할 수 있는) 숙고 체계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그리고 갈등이 생길 때면, 흔히 그렇듯이 이기는 쪽은 선조 체계다. 설득력 있는 이유를 대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뭔가 역겨운 느낌이 우리에게서 좀처럼 가시지 않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을 위한 전제
인간의 마음이 클루지인 까닭은 우리 안에 두 개의 체계가 있다는 사실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이 두 체계가 상호 작용하는 방식 때문이다. 우리가 실제로 지니고 있는 것은 두 체계의 어중간한 결합이다. 그래서 조상 전래의 반사 체계는 유기체의 전체적인 목표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호응하며 맥락 기억처럼 낡고 부적당한 부분들로 이루어진 숙고 체계는 무진 애를 써야만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의식적이고도 신중한 선택이 항상 최선의 선택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대니얼 카너면이 관찰했듯이 반사 체계는 그것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숙고 체계가 숙고하는 것보다 뛰어나다. 불가피하게 선조 체계가 더 잘 담당할 수 있는 결정들이 존재한다. 고려할 변수들이 너무 많을 때 상황에 따라서는 의식적인 심사숙고보다 무의식적인 결정이 더 나은 기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본능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이 종종 신속하면서도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보통 유사한 문제들에 대해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직관은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연마된 철저하게 무의식적인 사고의 결과다.
진화는 우리에게 상이한 능력을 지닌 두 체계를 남겨주었다. 하나는 틀에 박힌 일을 처리할 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반사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틀을 벗어나 생각할 때 유익한 숙고 체계다.
우리가 이 두 체계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조화를 꾀할 때, 우리의 결정이 편향되기 쉬운 상황들을 밝혀내고 이런 편향을 극복할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지혜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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