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자청의 인생을 바꾼 책: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 생각의 역사를 뒤집은 기막힌 발견> 오념된 신념

by P&TB 2024. 2. 27.
반응형

자청이 이 책을 읽고 인생이 달라졌다는데 어떤 비밀이 숨겨있을까요?

클루지 표지* 출처: yes24

KLUGE 2 오염된 신념: 속아 넘어가도록 타고난 사람들

신념과 관련된 우리의 능력을 떠받치는 체계는 한편으로 강력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신, 조작, 오류에 취약한 것이기도 하다.

정신적 오염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 유기체는 그 신념이 어디서 생겼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들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의 신념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주로 다른 목적을 위해 진화된 '재고품'들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종종 이런저런 신념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며, 나아가 우리가 부적절한 정보의 영향을 얼마나 크게 받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특성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의 나머지 속성들도 부정적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갈퀴효과 '인 셈이다. 심미적인 요인이 신념의 형성 과정에 개입하는 잡음으로 작용한다. 조던의 후광효과를 나이키가 고려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우리는 모두 속아 넘어가도록 타고 난 셈이다.

후광효과는 (그리고 그것의 부정적인 역효과는) 실제로 더 일반적인 현상의 특수 사례일 뿐이다. 무엇이든 우리 마음속에 떠돌고 있는 것이라면, 심지어 머릿속에 떠도는 한두 마디 말조차 우리의 지각과 신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특정 지을 때 이미 자기 머릿속에 있던 것과 관련짓는 경향이 있다.

'초점 맞추기 착각 focusing illusion'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단순히 사람들의 주의를 이런저런 정보로 돌림으로써 사람듸 생각을 조작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보여준다. 자기 자신에 대한 내면적인 느낌조차 우리의 초점이 마침 그때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신념이 예측하기 어려운 맥락 기억의 여과작용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신념이 변덕스러운 기억에 얼마나 많이 오염될 수 있는지를 제대로 깨닫고 잇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처신하고 있다는 우리의 주관적 인상은 객관 현실과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사고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인간의 신념은 기억에 의해 매개되기 때문에, 우리가 아주 어렴풋이 의식하는 사소한 것들의 영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무슨 기억이든 가장 최근의 것을 또는 가장 쉽게 기억나는 것을 다른 자료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어쨋든 우리의 기억은 일차적으로 우리 자신의 경험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조직된다. 하지만 이런 불균형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는 거의 취해지지 않는다.

정신적 오염은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전혀 상관없는 정보가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닻 내림과 조정 anchoring and adjustment'의 과정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임의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자기가 원하는 답을 찾을 때까지 이동한다. 사람들은 가장 현명한 답을 찾기 위해, 즉 그럴듯해 보이는 범위의 중간 값을 구하는 식으로 전략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닻내림 효과가 주변 정보 또는 심지어 전혀 무관한 정보가 신념과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례는 결코 아니다. 사소한 차이가 일상적으로 우리의 기억과 나아가 신념에 영향을 미친다.

편리한 사고방식 곧 사람들이 자신에게 친숙한 것을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다. 이른바 '단순한 친숙 효과 mere familiarity effect'이다. 친숙한 것을 선호하는 행동은 우리 선조들의 일상 속에서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선택된 것일지 모른다. 친숙한 것에 집착하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지 못할 때 심각하다.

친숙한 것에 매달리는 경향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위협적일수록 더욱 강해진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할 때 위협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집단, 목적, 가치 등에 평소보다 더 강력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말썽꾸러기 생각 도구

초점 맞추기 착각, 후광효과, 닻 내림과 조정, 친숙효과 등의 정신적 오염 예들을 살펴보았다. 우리의 사고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빠르고 자동적이며 주로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신중하고도 판별력 있게 천천히 진행되는 사고이다. 첫 번째 사고를 '선조 체계 ancestral system' 또는 반사 체계 reflexive system'라고 부르고, 이것은 우리가 이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빠르고 자동적으로 전개되는 듯하다. 그리고 두 번째 사고를 '숙고 체계 deliberative system'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체계가 하는 일이란 어떤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살피며 심사숙고하여 (때로는 제대로 때로는 그릇되게) 판단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사 체계는 숙고 체계보다 분명히 더 오래된 것이며, 거의 모든 다세포생물에게서 이런저런 형태로 발견된다. 반면에 우리의 목표와 선택의 논리를 의식적으로 따지는 숙고 체계는 훨씬 뒤늦게 생긴 것으로, 아주 소수의 종들만, 어쩌면 인간만 지니고 있는 것이다. 두 체계의 신경적 기초느 매우 다르다. 반사 체계는 일부는 소뇌, 운동 통제와 관련된 기저핵, 정서와 관련된 편도체와 같은 진화적으로 오래된 뇌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에 숙고 체계는 기본적으로 전뇌에, 특히 다른 포유동물에서도 작게나마 발견되는 전전두피질에 근거하는 듯하다.

숙고 체계가 정말로 합리적인 사고를 가능케 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합리적 체계라고 부르지 않는다. 숙고 체계는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현명하게 판별하려는 의도는 항상 존재한다. 거꾸로 우리는 반사 체계가 비합리적일 것이라고 가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숙고 체계보다 근시안적인 것은 틀림없지만 완전히 비합리적인 체계였다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반사 체계를 정서와 동일시하는 것은 언뜻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위험한 것이다.

숙고 체계가 진화의 최근 산물로서 더 정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의 결정은 덜 객관적인 반사 체계가 제공하는 간접 정보에 거의 언제나 의존한다. 그래서 숙고 체계의 지배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조 체계가 균형 잡힌 자료를 건네리라는 보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하거나 마음이 산란한 경우에 숙고 체계는 가장 먼저 작동을 멈추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선조 체계가 무의식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때로는 우리가 상황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역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게다가 더 위험한 사실은 진화를 통해 생겨난 추론 능력이 맥락적으로 조직된 기억의 꼭대기에 위치하기 때문에, 객관성의 환상이 생긴다는 점이다. 선조 체계는 우리가 깨닫지도 못하는 미묘한 방식으로 우리의 신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확증 편향과 동기에 의한 추론

우리는 주제가 무엇이든 우리의 신념을 위협할 만한 것보다 우리의 신념에 잘 들어맞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라고 부른다. 우리가 (거창한 것이든 하찮은 것이든) 어떤 이론을 믿고 있다면, 그것을 위협할지도 모를 증거보다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가 우리 눈에 더 잘 띄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확증 편향은 맥락적으로 조직된 기억의 불가피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억을 끄집어 낼 때 컴퓨터처럼 모든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치하는 것들을 찾는다. 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인간처럼 맥락 의존적인 기억을 지닌 종에게 이런 오류는 늘 존재하는 위험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엘리너 포터의 1913년 아동소설 <폴리아나 Pollyanna>에서 나온 폴리아나라는 용어는 긍정적으로는 영원히 변치 않는 낙천가를 뜻하고, 부정적으로는 현실의 합리적인 선을 넘어 지나치게 낙천적인 사람을 뜻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와 비슷한 구석이, 곧 현실과 일치하든 일치하지 않든 세상을 긍정적으로 기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우리가 믿고 싶지 않ㅇ느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동기에 의한 추론 motivated reasoning'이라고 불리는 편향으로서 확증 편향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확증 편향은 우리의 신념과 일치하는 자료에 주의가 쏠리는 자동적인 경향인 반면, 동기에 의한 추론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더 까다롭게 따지는 보완적인 경향이다. 자신의 견해에 반대되는 경우에는 쉽게 결함을 찾아낸 반면에,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결론을 내리는 것에는 똑같이 심각한 결함이 있어도 그것을 잘 찾아내지 못한다.

신념의 오염, 확증 편향, 동기에 의한 추론을 다 합치면 결국 우리 인간은 거의 무엇이든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종이라 하겠다. 특히 종교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까닭은 부분적으로 그것이 진실이기를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믿고 싶은 마음이 그것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도록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기에 의한 추론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동기에 의한 추론으로 자신을 속인다면 우리는 잘못된 신념 또는 망상을 고수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 마찰을 불러올 수 있고, 자기 파괴에 이를 수도 있으며, 과학적인 대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동기에 의한 추론은 진화의 관성 탓이라기 보다 우리에게 예견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화를 통해 신중하게 추론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함께 지니고 있지는 않다. 추론이라는 강력한 도구와 자기기만이라는 위험한 유혹이 결합하면, 어떤 큰 위험이 따르는지를 우리는 예견할 수 없다. 즉 우리에게는 사실상 우리가 편향되지 않도록 막아줄 내적 장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신중한 추론의 기제를 얼마만큼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적인 자아의 몫이며, 때문에 우리는 (불행이든 다행이든) 우리가 원하는 만큼 편향될 수밖에 없다.

뒤엉켜 있는 신념과 추론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가 크게 걸려 있지 않은 경우에도, 우리의 지식(또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우리가 추론하고 새로운 신념을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된다. 우리는 삼단논법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으며, 이 추상적인 형태를 마음대로 일반화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에 현혹되어 어떤 주장이 논리적인지 주의 깊게 따지는 일을 너무 자주 게을리한다.

아주 훌륭하게 제작된 체계가 있다면, 이 체계에서는 신념과 (새로운 신념을 형성하는) 추론의 과정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이 (삼단논법처럼) 명시적인 형태의 형식논리를 다루게 되기 훨씬 전부터, 다양한 생물들은 아마도 특별한 성찰의 과정 없이 자동적으로 비형식적인 추론들을 수행했을 것이다.

이미 신념과 추론이 너무 많이 뒤얽혀 있어서, 일상적인 사고에서 이 두 가지를 완전히 분리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해서 우리가 갖게 된 것은 클루지와 다름없다. 이것은 신중한 추론의 훌륭한 체계이지만 여기에는 편견과 사전에 형성된 신념의 안개가 쓸데없이 너무 자주 낀다.

인간이 삼단논법을 평가할 때는 두 개의 상이한 신경회로가 사용된다. 하나는 논리적 추론 및 공간적 추론과 더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며(양측 두정엽), 다른 하나는 사전에 형성된 신념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전두엽과 측두엽). 전자는 논리적이고 공간적인 추론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후자는 자동적으로 발동된다. 때문에 논리를 제대로 구사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인간이 때대로 형식논리학적인 의미에서 합리적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화를 통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논리의 규칙들을 배울 수 있을 만큼 (그리고 일단 설명을 들으면 그것의 타당성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영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습득할 수 있지만, 형식 논리를 습득해 사용하고 신념에 관해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은 진화의 산물이라기보다 문화의 산물일 것이다. 진화는 인간에게 이런 능력을 가능케 해 주었지만, 이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추상적인 논리를 습득하는 것이 언어를 습득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현상이 아니다. 신념에 관한 추론을 하는 데 필요한 형식적 도구들이 적어도 학습의 산물이며, (인간의 합리성이 선천적이라는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정하듯이) 인간의 표준 능력이 아님을 시사한다.

우리는 일단 어떤 것이 (무슨 이유에서든) 참이라고 결정하면 그것을 믿기 위해 종종 새로운 이유들을 만들어내곤 한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믿을 만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정말로 믿기 시작할 것이며, 경우 따라서는 (원래의 증거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명백히 판명이 났는데도) 여러분을 꾸짖기까지 할 것이다. 진화의 산물이자 클루지인 우리 인간은 종종 결론에서 출발해 그것을 믿기 위한 이유를 찾는 식으로 거꾸로 나아가는 비합리적인 존재이다.

오감을 뒤흔드는 신념

내가 보기에 신념은 세 가지 근본적인 요소들을 꿰매어 놓은 것 같다. 곧 기억 능력, 이미 아는 사실에서 새로운 사실을 도출하는 추론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각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지각과 신념은 언뜻 별개로 보일지 모른다. 지각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맡고 느끼는 반면에, 신념은 우리가 아는 것 또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념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무엇을 보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직접 관찰하지 않은 것을 믿기 시작하면서 생긴다.

현대 세계에서 우리가 믿는 많은 것들은 직접 또는 쉽게 관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대신에 친구, 선생님, 대중매체 등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새로운 신념을 습득하는 것은 인간이 엄청나게 복잡한 문화와 과학기술을 건설하는 데 핵심이 되는 능력이다.

사람들이 어수선한 조건이나 시간 압박을 받을 때, 거짓된 것을 더 자주 받아들인다. 결국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고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생각을 (그것을 제대로 평가할 기회를 얻지 않는 한) 자동적으로 믿는다는 얘기다.

이렇게 듣고 받아들여 평가하는 것과 듣고 평가한 뒤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순서의 차이는 언뜻 하잖아 보일지 몰라도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누구나 직감하듯이 가능성에 대해 그저 묻기만 해도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듣는 것을 왜 그렇게 자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애당초 지각을 위해 사용되던 기제로부터 신념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각의 경우에는 우리가 보는 것의 상당 부분이 참이다. 그런데 신념의 생성과 소멸을 둘러싼 주기도 똑같은 식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직접 감각을 통해서든 아니면 (아마도 더 빈번하게는) 간접적으로 말과 대화를 통해서든, 어떤 정보를 얻게 되면 그것을 곧바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중에야 비로소 (그나마 그럴 일이 생기면) 그것이 믿을 만한 것인지 따져본다.

이 시대에 언어가 언제나 진리의 확실한 원천인 것만은 아니다. 이상적으로 따지자면 (정보를 입수해 참이라고 가정한 뒤 시간이 있으면 평가하는) 지각의 기본 논리는 신념이 언어를 통해 명시적으로 전달될 경우에 순서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화는 이 경우에도 앞으로 생길 결과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누적된 기술로 신념의 기제를 제작하는 게으른 방식을 취했다. 우리가 들었거나 읽은 것을 별다른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은 이런 결과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의 신념들은 기억의 장난, 감정, 정말로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할 지각 체계의 변덕 등으로 오염되어 있다. 과연 신념은 우리가 참이라고 아는 것일까? 아니면 참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호모사피엔스에게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기억하고 적절히 고려할 수 있는 체계란, 게다가 우리가 그저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것에 오염되지 않은 체계란 낯선 단어일 뿐이다.

무엇이 행복하게 만들고 왜 그런지 알고 싶다면 

 

[갤리온]클루지 :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 (리커버 에디션)

COUPANG

www.coupang.com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