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청이 이 책을 읽고 인생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는데 어떤 비밀이 숨겨있을까요?
PROLOGUE 클루지 생각의 함정들, 그러나 생각의 무기들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대부분 '영리한'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 '클루그klug'가 기원이라고 믿는다. 공학자들은 대부분 시간이나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클루지를 만든다.
우리 신체에도 클루지가 숨어 있다. 척추나 망막이 대표적이다. 자연은 쉽게 클루지를 만들곤 한다 자연은 그것의 산물이 완벽한지 또는 세련됐는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작동하는 것은 확산하고 작동하지 않은 것은 소멸할 뿐이다.
우리의 마음도 클루지다. 나는 인간의 마음이 신체만큼이나 클루지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다시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최적화는 진화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진화 속에서 '생길 수 있는possible 결과'일 뿐이다.
진화의 가능성은 이전 진화의 제약을 받는다. 척추처럼 이미 있던 것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진화의 관성이 생기는 까닭은 새로운 유전자가 이전 유전자들과 조화롭게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며, 즉각적인 방식으로 진화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당장 이로운 유전자들을 선호하고 장기적으로 더 나을지도 모를 대안들을 폐기하는 경향이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끊임없이 생존하고 번식해야만 하기 때문에 진화를 통해 최적의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옛 체계 위에 새 체계가 얹히는 썩 아름답지 못한 과정을 앨먼을 '기술들의 누진적인 중첩progressive overlay of technologies'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의 최종 산물이 클루지가 되기 쉽다.
마음이 클루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는 인간의 진화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유전체의 성질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기껏 몇십 만년을 살아왔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체가 98.5% 동일하다. 이것은 인간 유전물질의 거의 대부분이 언어도 없고 문화도 없고 사려 깊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생물의 단계에서 진화했음을 시사한다. 언어, 문화, 사려 깊은 생각 등 우리를 인간으로서 가장 뚜렷이 정의해 주는 특성들이 원래 매우 다른 목적에 적합한 유전적 토대 위에 세워졌음을 뜻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 영역들인 기억, 신념, 선택, 언어, 행복 등을 살펴볼 것이다. 이 모든 경우에 클루지가 넘쳐난다는 것을 여러분은 보게 될 것이다. 기억이 오작동, 신념의 오류, 언어의 애매함 등, 그리고 무엇이 행복하게 하는지 또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나는 인간의 마음이 형성될 때 진화의 관성이 수행한 역할을 고려함으로써 우리의 한계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이고자 한다.
자연이 언제나 독창적이라고 가정하는 대신에 인간 마음의 여러 측면들을 그 자체로서 살펴보면 진정으로 위대한 것과 아쉬운 경우를 구별하는 것은 충분히 값진 일이다.
우리는 완전한 것에서 배울 수 없는 두 가지를 클루지에서 배울 수 있다. 첫째로 클루지는 우리가 진화해 온 역사에 대해 특별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되면 그것이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쉽게 알아챌 때가 많다. 불완전한 것은 과거를 재구성하고 인간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로 클루지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 단서를 줄 수 있다. 우리가 진화해 온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솔직히 들여다볼 때, 비로소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고귀한 우리 마음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KLUGE 1 맥락과 기억 모든 클루지의 어머니여, 인지적 악몽의 원흉이야!
기억은 클루지의 어머니, 단일 요인으로는 인간의 인지적 기벽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뒤죽박죽 기억 체계
컴퓨터는 특정 기억을 인출하려면 해당 주소를 찾아가면 되는 '우편번호 기억postal-code memory' 체계로 되어 있다. 우리는 일종의 '맥락 기억contextual memory'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기 위하여 맥락이나 (우리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넌지시 알려주는) 단서를 사용한다.
맥락 의존적인 기억은 컴퓨터처럼 모든 기억을 똑같이 취급하는 대신에 우선순위를 매긴다. 나아가 맥락 의존적 기억은 빠르게 병렬로 탐색될 수 있다. 맥락 기억의 고유한 단점은 신뢰성과 관련된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뇌 속의 위치가 아니라 단서를 중심으로 매우 강력하게 조종되기 때문에 쉽게 혼동이 일어난다.
똑똑한 일상을 방해하는 기억의 법칙들
맥락의 강력한 효과는 기억의 출력 펌프를 '예비priming'하는 일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비 효과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심대하다. 예비 효과는 우울을 강화할 수도 있다. 우울한 기분 -> 부정적인 것들을 생각하도록 예비-> 우울 강화, 우울한 사람-> 술 마시기, 실연 노래 듣기 등 우울하게 만드는 활동 빠짐-> 우울한 기분 심화
맥락과 단서 중심으로 인간의 기억이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인간의 기억이 종종 함께 뒤섞여버린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방해와 간섭은 '잘못된 기억'이라는 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목격자 증언이 신뢰하기 어려운 까닭은 우리의 기억이 조각조각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억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것들을 정돈하기에 적합한 체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의 인출은 맥락에 영향을 받게 된다. 사건이나 범죄에 대한 기억도 다른 모든 기억과 마찬가지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은 불안정해진다. 기억은 변화될 수 있으며, 이것은 정치적 사건이나 우리 자신의 경험처럼 아주 중요해서 굳게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는 기억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기억의 왜곡과 간섭은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적절한 버퍼가 없는 인간의 기억 창고는 어찌 보면 사진들이 어지럽게 가득 차 있는 상자와 비슷하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기억해 내야 할 경우에 우리의 기억 체계는 형편없는 것이다. 최근 것과 빈번한 것의 갈등은 인간에게 거의 보편적인 또 다른 경험도 설명해 준다. 우선순위에 따라 차례대로 처리하는 복이 인간에게는 없다.
인간의 기억은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기억과 그 일이 언제 일어났는가에 대한 기억이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일수록 기억이 더욱 생생하다는 원리이다. 그러나 이 생생함에도 나름의 한계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생생했던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대한 기억도 덩달아 희미해진다.
허술한 기억에 대처하는 몇 가지 편법들
기억 재구성 전략
어떤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단순히 회상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이 정보를 추론해 내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른바 '재구성' 작업을 통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날짜가 불분명한 사건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연대기적 지표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출처 기억 전략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가 아니라 '어떻게'와 관련된 것이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내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가?" 이런 종류의 기억을 '출처 기억 source memory'이라고 부르는데, 때때로 심각한 곤란을 초래한다.
장소법 전략
'장소법 method of loci'는 만약 여러분이 긴 단어 목록을 외워야 한다면 여러분은 각 단어를 어느 익숙한 큰 건물의 각 방에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모든 기억술사들이 변형된 형태로 사용하는 이 방법은 꽤 효과적인데, 왜냐하면 각 방이 기억 인출의 상이한 맥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운율과 박자를 이용한 전략
또 다른 고전적 방법은 랩 음악처럼 운율과 박자를 이용해 기억을 돕는 것이다.
반복 기억 전략
기계적인 암기가 꽤 효과적인 까닭은 이것이 자주 일어나는 사건들을 바탕으로 기억에 접근하는 뇌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지만, 이 방법 역시 매우 조야한 것이다.
왜 이렇게 우리의 기억은 허술할까?
기억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며 새로운 기억술을 개발할 가능성도 무궁무진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단서가 기억의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해결책은 기억의 한계에 알맞게 우리의 삶을 조정하는 것이다. 기억에 대한 요구를 줄이는 방향으로 습관을 들이는 것이 제한된 정신능력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편 번호 체계는 신뢰도를 보장하는 반면에, 맥락 체계는 어떤 순간에 가장 필요한 기억이 무엇일지를 추론하는 역할을 한다.
매우 많은 것을 기억에 의존하고 있지만 기억은 심할 정도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행동하는 유기체, 세계를 지각하고 그것에 반응해 행동하는 존재다. 그리고 이런 사정 때문에 정확성보다는 속도를 중시하는 기억 체계가 발달하였다. 많은 상황에서, 특히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최근도recency와 빈도와 맥락은 기억을 조정하기에 적합한 강력한 도구들이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잊는지는 맥락과 빈도와 최근도의 함이지, 내면의 평화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오류의 경향이 있는 기억과 추론 능력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이 없다. 과거 사건들에 대한 완벽한 기록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래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는 것은 원칙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신속하지만 신뢰하기 어려운 맥락 기억을 토대로 우리의 추론 능력이 발달했다는 사실은 어떤 이상적인 타협의 산물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역사적 사실일 뿐이다. 추론에 사용되는 두뇌 회로가 왜곡도리 수 있는 기억을 가지고 작업하는 까닭은 그것이 진화를 통해 생겨난 유일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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